겨울이 되면 몸과 마음이 가장 움추러드는 곳은 어디일까? 찬 바람 막을 게 걱정이고 차가운 벽과 방바닥이 서러운 사람들. 아직도 연탄에 의지하여 추위를 이겨야 하고 늘 화재를 걱정해야 하는 고단한 삶들. 바로 달동네 주민들이다.

도시개발 및 생활수준 향상 추세에 따라 소위 ‘달동네’가 점점 사라져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도시 뒤안길에는 50-60년대식의 극빈층 동네가 남아 있어 겨울을 맞는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빽빽하게 들어선 판자촌 및 슬라브집들, 좁은 골목길에는 고양이만 어슬렁거리고 연탄재들이 수북히 쌓여 있어 어려운 그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달동네(산동네)’란 도시 외곽의 산등성이나 산비탈 등 비교적 높은 지대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일컫는다. 달동네라는 이름은 높은 곳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인다는 뜻에서 붙여졌는데, 광복 이후 조국을 찾아 귀국한 동포들과 남북 분단 이후 월남한 난민들이 주로 도시의 산비탈 등 외진 곳에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도시빈민층의 주거밀집지역으로서 달동네가 확산된 주요 배경에는 1960년대 이후 수출주도형 공업화가 추진되면서 비롯된 대규모 이농현상도 한 몫을 했다. 1960년대 이후 농촌을 떠나는 인구가 급속히 늘어났는데, 도시로 이동한 이농 인구 규모 대비 도시의 일자리가 충분하지않았기 때문에 이농 인구의 대부분은 단순노동, 노점, 행상 등에 종사하면서 도시빈곤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만성적 빈곤과 실업 상태에서 이들이 접근가능한 주택은 산비탈에 있는 매우 저렴한 불량주택 뿐이었던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진행된 재개발사업으로 달동네의 도시빈곤층은 주거비가 싼 곳을 찾아 단독주택지의 지하방, 옥탑방, 비닐하우스, 쪽방 등으로 흩어졌다.

전남 순천에 위치한 드라마 세트장에 가면 전형적인 달동네 전경을 만날 수 있다. SBS ‘사랑과 야망’, MBC ‘에덴의 동쪽’, KBS ‘제빵왕 김탁구’ 등의 촬영지이기도 한 이곳은 산비탈에 빽빽하게 들어선 판자촌과 좁은 골목길, 연탄집, 참기름집, 미용실, 복덕방 등을 통해 달동네의 삶을 생생하게 돌아볼 수 있다.

서울 시내에는 아직도 달동네나 판자촌들이 여러곳 남아 있다. 노원구 백사마을, 홍제동 개미마을, 성북구 정릉골, 개포동 구룡마을 등이 그곳들이다. 종로구 낙산 이화마을도 달동네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하지만 이곳은 도시정비 및 벽화마을 프로젝트로 이미 관광여행코스가 되어 빈민층이 사는 곳은 아니다.

노원구 중계동 산 104번지. 번지수를 따라 ‘백사마을’로 이름붙여진 백사마을은 60-70년대 빈민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1967년 정부의 강제이주로 용산, 안암동, 청계천 판자촌 등의 1,135세대 철거민들이 천막촌을 이루면서 백사마을이 시작됐다.

서대문구 홍제3동 9-81 일대의 개미마을은 6·25 전쟁 이후 갈 곳이 마땅치 않던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와 임시 거처로 천막을 두르고 살아서 '인디언촌'이라고 불리웠던 곳. 이후에 주민들이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이 개미를 닮았다고 해서 '개미마을'이라는 정식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용구와 딸 예승이가 살던 동네다. 가파른 언덕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라 정말 개미처럼 부지런하지 않으면 살기가 어려운 동네일 것 같기도 하다.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정릉골은 낮은 담벽, 슬라브 및 판자지붕, 좁은 골목길 등 옛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으면서 일반인들에게 별로 알려져 있지않은 숨겨진 달동네이다. 벽화도 거의 없어 꾸미지않은 본래의 달동네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성북구 정릉3동 벧엘교회-솔샘로 17길-대명교회-성화사-북한산 정릉탐방안내소에 이르는 정릉골은 산책코스로도 훌륭하다. 미로같은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계단식으로 층층이 지어진 옛집과 발 아래 지붕들, 위로는 보현봉이 올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전망도 즐길 수 있다. 성화사 좌측 언덕길을 넘어가면 넓은 텃밭이 펼쳐져 있어 서울시내에서 보기 힘든 전원마을 풍의 시골풍경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장군의 아들 김두한과 소설가 박경리 씨가 살던 동네이기도 하다. 영화 건축학개론, MBC 드라마 누나, SBS 드라마 자이언트, 야왕 및 찬란한 유산 등이 정릉골에서 촬영되었다.

강남 구룡마을은 산비탈 달동네는 아니지만 대모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서울의 대표적 판자촌이다. 구룡마을은 1980년대 말부터 도심의 개발에 밀려 오갈데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서 형성된 무허가 판자촌으로, 현재 1,242가구에 약 2,53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항상 화재 등 재해에 노출되어 있고, 오․폐수, 쓰레기 등 생활환경이 아주 열악한 곳이다. 서울시는 2014년 11월 구룡마을 대형화재를 계기로 그간 논란이 많았던 민영개발에 대해서는 개발이익 사유화에 따른 특혜논란, 사업부진시 현지 거주민들의 주거대책 미비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 그동안 개발방식을 놓고 갈등을 빚었던 강남구측과 합의, 서울시 SH공사 주도의 공영개발로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비해 종로구 낙산 아래 ‘이화마을’은 일제시대 지어진 적산가옥 수백채가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이 유명해진 건 2006년 화가 한젬마 씨 등 68 명의 예술가가 참여한 ‘낙산 공공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 동네 골목길 곳곳이 형형색색으로 그려진 벽화마을로 재탄생하면서 부터이다. SBS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 영화 ‘오직 그대만’ 등이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테마관광여행코스로 변모하게 됐다. 산비탈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어 본래는 달동네 모습이었지만 통영 동피랑마을처럼 문화예술적으로 잘 개발된 달동네의 전형이다.

임윤식  lgys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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