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은 제2의 중동 붐‘을 대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동지역에서 발전 ‧ 플랜트 ‧ 인프라 분야의 공사 발주가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현대건설은 플랜트 확보 분야 전문 인력 확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는 엔지니어링 역량 극대화를 우선순위에 두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이다. 그는 특히 ‘엔지니어링 기반의 글로벌 건설 리더’를 강조한다. 미국 ‧ 유럽 선진 업체 대비 뛰어난 가격 경쟁력, 후발주자와 차별화되는 높은 기술 수준으로 해외 사업을 키워 진정한 글로벌 강자로 탈바꿈하겠다는 경영전략이다.
이를 위해 영업 조직부터 재편했다. 국내와 해외로 분리된 영업조직을 해외 중심으로 통합해 일차원적인 영업활동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핵심분야 외국인 채용도 늘리는 중이다. 시운전 ‧ 설계 ‧ 품질 등 특수 분야에 있어 전문성을 갖춘 외국 인력을 적극 영입하고 있다. 저가 수주도 자제하기로 했다. 과거 도급 위주의 저수익 사업모델이 원가율을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꼽히자 선별 수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정수현 사장은 지난 1월 2일 신년사에서 “올해는 기필코 ‘글로벌 건설 명가’를 향해 힘차게 날개쳐 올라보자”고 야심찬 발언을 했다. 지속적인 체질개선과 기업문화 혁신의 노력을 더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각오다.
그는 “올해 해외는 환율불안과 유가하락, 국내는 공공분야의 경우 대형 건설사의 ‘담합’ 낙인으로 인해 신규 사업 수행에 적지 않은 난관과 차질이 우려된다”며 “면밀히, 또 크게 보고 철저히 계획해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이런 위기가 기회로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 도급(EPC) 형태의 사업에서 탈피해 사업구조를 다변화하고 사업관리 체계를 선진화해야 수익성 중심의 내실경영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특히 현대건설은 향후 100년을 준비하는 ‘엔지니어링 기반의 글로벌 건설리더’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를 위해 현대건설이 현대자동차 그룹 편입 이후 그룹 중장기 비전과 건설부문 중장기 추진 전략에 따라 조직 및 시스템을 정비했다.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해외시장 다변화와 리스크데 대응하기 위해 과감히 R&D에 투자하고 인재양성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외에서 승승장구, 3년 연속 100억 달러 돌파
지난 설날 정수현 사장은 연휴를 잊은 채 해외현장으로 날아갔다. 설 연휴기간 내내 쿠웨이트와 카타르, 스리랑카 등 해외현장에서 강행군을 했다. 쿠웨이트는 자베르 코즈웨이 해상교량공사, 카타르 국립박물관 및 하마드 메디컬시티, 스리랑카 콜롬보 항만 확장공사 등 총 9곳을 방문, 이들 사업장의 공사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설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직원들을 격려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건설기업들의 해외진출 지역 다변화로 중동시장 수주비중이 감소하고 있지만 중동은 여전히 핵심시장”이라며 “앞으로 발주될 공사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연휴기간 현장 방문에 나서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은 현대건설이 글로벌 건설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국내 건설 업체 중 유일하게 해외에서 100억 달러 이상 수주했다.
국제유가하락, 대형 공사 발주 감소, 세계 경제 회복 지연 등 악재들이 많았지만 현대건설은 111억 달러어치 공사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이는 3년 연속 100억 달러 돌파다. 덕분에 미국 건설 ‧ 엔지니어 전문지 ENR이 선정한 2014년 세계 250대 종합건설 업체 순위에서 13위를 차지했다.
현대건설이 국내 건설사를 넘어 글로벌 건설사로 도약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처럼 해외에서 승승장구해 지난해 17조387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대비 24.7% 늘어났다. 영업이익만도 9589억 원으로 2013년보다 20.9%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국내 대표 건설사 현대건설이 완전히 살아났다’고 평가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유동성 위기로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을 겪었던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을 만나면서 건설 명가의 자존심을 회복했다.
현재 현대건설은 36km 세계 최장 해상다리를 건설하고 있다. 쿠웨이트에서 강변북로보다 7km 이상 긴 도로를 뚝 떼어 내 바다 위레 올리는 거대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21세 판 ‘모세의 기적’과도 같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쿠웨이트 ‘자베르 코즈웨이 해상교량’ 프로젝트를 2012년 11월 수주해 2013년 11월부터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쿠웨이트만을 가로질러 쿠웨이트시티와 수비야 신도시를 연결하는 길이 36.14km, 왕복 8차로(비상차로 2개 포함)의 초대형 프로젝트로 쿠웨이트 북부지역 개발의 핵심 사업이다. 공사비는 26억2000만 달러(약 2조9000억 원)로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다.
현대건설이 짓는 메인교량에 GS건설이 짓는 도하링크(연결구간) 12.43km를 합치면 48km가 넘는다. 2018년 11월에 완공되면 중국 칭다오의 하이완 대표를 뛰어넘어 세계 최장의 다리로 우뚝 서게 된다.
공사규모도 상상을 초월한다. 웬만한 빌딩 한 채보다 높은 길이 40~60m, 지름 3m의 콘크리트 말둑 1000여 개를 해저에 박고 있다. 개당 1800t에 이르는 콘크리트 교량 상판 958개를 육상에서 제작한 뒤 해상크레인 등 초대형 해상장비를 이용해 바다 위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공할 예정이다.
1970년대 정점 찍은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건설
현대건설은 국내건설업계 최초로 해외 건설시장에 진출했다. 정주영 회장은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앞두고 누구보다 아꼈던 동생 정인영을 내보내야 했다. 꼼꼼한 성격의 정인영이 대규모 해외 공사는 무리라고 반대하자 내치면서까지 뛰어든 해외 건설은 현대는 물론 한국의 일취원장을 이끌었다.
당면 현안이 1차 석유 위기에 따른 경제난국과 외환보유액 고갈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1975년 이란에 지점을 설치하면서 중동진출을 준비한 것이다. 이후 이란 반다르 압바스 동원훈련 조선소 공사를 수주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 수주를 계기로 중동 지역에서 사업을 본격화했다.
1970년대 건설 한국의 정점을 찍은 공사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발주한 주베일 산업항 건설 공사다. ‘세계 8대 불가가사의에 포함해야 한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규모가 크고 난공사인 주베일 항만 공사 입찰과 시공 ‧ 완공까지의 과정은 아직도 전설처럼 살아 숨 쉰다.
1975년 7월 현대건설에 극비정보가 날아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10억 달러 규모의 항만 공사를 발주할 것이라는 정보였다. 훗날 정주영 회장은 주베일 산업항 공사에 관련한 정보를 보고받았을 때의 감정을 이렇게 회고했다. ‘피가 끓었다’
문제는 낙찰의 고지가 절벽처럼 험난하다는 것. 선진국 건설업체들이 몇 년 전부터 입찰을 준비해 온 상황에서 경쟁에 뛰어들기에는 늦었던 것이다. 모두 회의적인 가운데 정주영 회장은 결코 늦지 않았다는 판단 아래 출사표를 던졌다. 현대건설은 어렵사리 마지막 열 번째 입찰업체에 선정됐다. 마지막 관건은 입찰가였다.
현대건설은 처음 예정금액은 15억 달러였지만 입찰 경쟁이 거세지며 9억 달러로 낮춰 8억7000만 달러라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입찰일인 1976년 2월 16일. 뜻밖에도 9억444만 달러를 써낸 미국 업체가 수주한 것이다. 낙찰업무를 담당했던 현대건설의 중역이 9억 달러 이하면 너무 싸다는 생각에 실패하면 걸프만에 빠져 죽겠다는 각오로 9억3,114만 달러를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미국 업체의 입찰금액이 일부 공사에 한정됐다는 점이 밝혀지며 차액을 써낸 현대건설이 공사를 최종적으로 따냈다. 공기단축 약속도 사우디 측의 마음을 움직였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오게 된 공사는 9억3,114만 달러는 당시 우리나라 예산의 4분의 1에 이르는 엄어마한 금액이었다. 세계 건설 산업의 변방인 한국이 선진국 업체들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공사를 따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정주영 회장이 중동진출을 결심한 계기는 1973년의 제 1차 석유파동과 박정희 대통령의 지원도 한몫을 했다. ‘오일쇼크’로 우리나라 경제가 휘청일 때 박정희 대통령은 중동으로 눈을 돌렸다. 외환보유액이 3000만 달러 뿐이었던 그때 박정희 대통령은 정주영 회장을 불렀다. 상품 수출도 중요하지만 건설 수출이 대단히 중요하다며 ‘중동 진출을 권유하기 위해서였다. 정주영 회장은 1년 12달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어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공사 하기 제일 좋은 지역이라며 중동지역 진출을 결심하게 된다.
석유파동으로 현대건설의 자금사정이 악화되자 정주영은 중역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돌파구는 중동이다. 오일달러를 벌기 위해서는 중동으로 가야 한다.”
극심한 반대를 물리치고 1975년 이란의 반다르 압바스 조선소 공사 수주를 시작으로 중동에 진출한 현대건설은 불과 3개월 뒤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따내 중동 건설 열풍을 일으켰다.
이처럼 현대 건설은 혹독한 자연과 싸우는 등 모래밥을 먹어가며 ‘오일 달러’를 벌어왔다. 결국 ‘중동’은 대한민국 경제의 오아시스가 된 것이다. 1965년 국내 건설사 최초로 해외를 진출한 이후 1982년 국내 최초 해외 누적 수주액 100억 달러 달성했다. 그리고 2010년 말 국내 최초 해외 연간 수주액 100억 달러 달성하고 2013년 국내 최초 해외 누적 수주액이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GE와 손잡고 ‘신사업’ 공동 발굴
현대건설이 지난 24일 글로벌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과 MOU를 체결했다.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 신규 시장에 공동 진출하기 위해서다. 사업 분야는 건설, 발전, 병원 등으로 일부 프로젝트는 두 회사가 공동으로 지분을 투자해 개발을 추진한다.
MOU에 따라 두 기업은 앞으로 아시아와 유럽, 중동, 미주 등 지역에서 진행되는 건설, 발전, 병원 및 인프라 사업에 대한 공동 진출 방안을 모색한다. 발전과 오일 ‧ 가스 사업은 현대건설이 담당하는 공사에 GE가 제작한 터빈, 컴프레셔, 컨트롤 밸브 등 기자재를 납품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병원 사업은 현대건설과 GE헬스케어가 지난 2013년 7월 체결한 MOU를 발전시켜 아시아, 유럽, 중동 시장을 겨냥한 파일럿(PILOT) 프로젝트를 발굴한다. 병원 시공은 현대건설이 맡고 의료장비, 병원 솔루션은 GE헬스케어가 공급한다.
발전소 및 수처리 시설 사업은 지분을 공동으로 투자해 추진한다. 동반진출 시장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등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진출하는 국가의 수출신용기관(ECA)이 금융지원을 주선하면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관련 사업 기회 발굴도 확대할 수 있다“며 ”이번 양해각서 체결은 협력관계를 유지해 온 현대자동차그룹과 GE간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마연옥 기자 k-today@hanmail.net <저작권자 © 오늘의한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